仰 信
仰 惟 如 來 一 向 伏 信 우러러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고 한결같이 부처님의 지혜를 엎드려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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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계와 정토 신앙 2006-02-24 오후 9:01:04
  불교   수행
염불계와 정토 신앙
기림사의 역사에 있어서 주목을 끄는 것은 염불계(念佛契)의 활동이다. 즉 1802년(순조 2) 200여 명의 승려와 속인이 참여하여 염불계를 조직하여 정토왕생을 발원하였다. 당시 절이 많이 퇴락 해지자, 참봉 김창윤과 홍원 사문, 이관 혜한, 천준 태관 등이 주축이 되어 한편으로는 절을 중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목적으로 염불계를 조직했던 것이다.
계라는 것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정기간에 일정한 액수의 금전을 출자하여 상호 부조하거나,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모임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이러한 계의 존재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사찰에서의 계는 좀더 특수하고 구체적인 목적을 지닌다. 정토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여럿이 함께 모이기도 하고, 가람의 신축이나 보수, 또는 각종의 예배대상물을 조성하기 위해 조직하기도 한다.
이러한 계는 일찍부터 우리 나라에 있어 왔다. 그 가운데 불교와 관련된 계로는 신라 경덕왕(742~765) 때의 만일계(萬日契)가 시초이다. 즉 진주에 거주하는 수십 명의 거사들이 서방정토에 뜻을 두고 미타사를 창건하여 만일을 기약하며 수행하는 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계를 맺어 향을 사르는 것을 향도(香徒)라고 하였는데 서로 돌아가면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따라서 향도는 부처님 전에 향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모인 계로서 차례로 음식을 장만하는 상호부조의 성격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계가 널리 향촌사회에 보급되어 민간에서도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성행하였다. 사찰에서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 갑계(甲契)가 시작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경제가 궁핍해지고 사찰의 토지는 황폐해져 살림이 어렵게 되자 갑계가 생겨난 것이다. 한 사찰 안에 자(子)년에 태어난 사람부터 사(巳)년에 태어난 사람까지, 또는 오(午)년에서 해(亥)년 사이에 태어난 승려들이, 다시 말하면 나이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임을 결성하였다. 매월 또는 매년 일정한 자금을 내어 그 재산으로 이자를 받아 큰 액수가 모이면 전답을 구입하여 절에 기부하는 모임이다. 즉 사찰의 재산을 증식시키기 위한 계이다.
위와 같이 신라시대의 계는 불교 신앙결사로서 시작되었으나, 고려시대에는 민간의 불교 친목단체, 조선시대에는 공동의 목적달성을 위한 기금조성 등의 성격으로 변모하였다. 이밖에도 계는 그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전개되었는데, 만일계․염불계․지장계․불량계 등의 이름으로 때로는 보(寶)나 신앙 결사체 등과 확연히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계에 관한 구체적 이해는 해당 자료를 통해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기림사의 염불계는 그 구체적인 수행방법에 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염불계에 관해 기록한 「염불계대성공비」는 계의 결성 당시에 조성된 것이 아니라, 그 12년 뒤에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세워져 계의 취지와 주도인물, 참여자와 보시한 재산 등에 관한 내용만을 담고 있다. 이는 기림사의 염불계가 가지고 있는 원래 목적이 정토왕생을 위한 수행과 가람을 중수하기 위한 재원의 마련이라는 이중의 목적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한다. 염불계가 결성된 후, 200여 명의 계원이 희사한 재산은 상당한 액수에 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림사는 가람을 일신하였다. 한편 이러한 계의 명맥은 최근까지 이어져 1987년에는 절의 칠성계원 일동이 삼성각에 칠성탱화․산신탱화․독성탱화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출처 : 전통사찰총서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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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불삼매 들면 부처님 곁에…” - 2006-02-24 오후 8:45:32
  불교   수행
1만일 염불수행 회향 설산스님

- “염불삼매 들면 부처님 곁에…” - “염불(念佛)이란 아미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부처님의 장엄한 상호를 연상하고 부처님의 공덕에 생각을 모으는 수행입니다. 염불삼매에 빠져 있는 시간만큼은 부처님이 바로 옆에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25일 강원도 건봉사에서 1만일(27년5개월) 염불수행을 회향하는 설산스님(정토사 주지). 유명한 염불도량인 건봉사 창건 이후 여섯 번째인 만일염불결사를 회향하는 스님은 “염불이야 말로 부처님을 친견하는 최고의 수행법”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한암 스님을 모시고 월정사 강원에서 경전공부를 하며 10안거를 성만하고 도선사 실달학원 원장으로 있으며 경론을 강의하는 등 선승의 길을 걸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인 염불도량인 건봉사에서 출가하고 생활한 탓인지, 염불수행을 하고 싶다는 원력이 항상 있었다. “출가 후 건봉사에서 공부하는 동안 원효 스님을 비롯해 효봉 청담 동산 스님 모두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길 원하옵니다’라는 송주(誦呪)를 외우셨다는 말을 들었다”는 스님은 “6·25사변 이후 폐허가 된 건봉사를 보고, 염불수행의 맥을 잇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때가 74년 5월. 건봉사에서 ‘만일염불’을 입재한 스님은 삼각산 정토사를 지어 ‘아미타 부처님을 친견하옵고, 미진세계 국토에 몸을 나투어 모든 중생 남김없이 구제하겠나이다’라는 발원과 함께 “만일동안 염불 수행을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염불수행을 계속해 왔다. “염불은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다”며 염불수행을 권유하는 설산 스님은 “ 입으로만 중얼거리지 말고 부처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면서 집중해야 공덕이 쌓인다“고 염불수행 방법을 설명했다. 또한 스님은 “1만일이란 우리가 만들어 놓은 분별에 불과하다”며 “회향법회는 대중들에게 염불수행의 공덕을 알리는 자리일 뿐, 죽을 때까지 수행자의 길로써 염불을 하겠다”고 말했다. 회향법회는 전국염불만일회(회장 김재일)와 건봉사 금강갑계(회장 이영선), 그리고 스님이 주석 중인 정토사 신도회 등에 의해 마련됐다. 오종욱 기자 gobaoou@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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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日염불結社 2006-02-24 오후 8:43:06
  불교   수행
萬日염불結社
[한국경제 2000-06-02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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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은 불교도들의 가장 초보적이고 보편적인 수행방법의 하나다. 염불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석가모니불 아미타불 관세음보살등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칭명 염불은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빨리 깨달음을얻게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선수행의 어려움보다 쉬운 염불 쪽이 채택돼 선종의 고승들까지 염불수행을 권장했다. 그런 탓으로 절에서도 백일기도 천일기도식으로 특별한 기간을 정해놓고 정진하는 기회로 삼았다. 심지어 승려와 재가신도가 공동목표아래 "염불결사"라는 조직을 만들어 27년이상을 함께 수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초의 염불결사(748~776)는 신라 경덕왕때 발징이 강원도 고성의 원각사(뒤에 건봉사)에서 처음 열었다. 31명의 승려와 1천여명의 재가신도가 참가했다는 기록이 "건봉사 사적"에 전한다. 신라 염불결사의 전통은 건봉사에 그대로 이어져 조선말기인 1851년 1881년 1908년과 1927년에도 각각 열렸다. 고려시대의 염불결사로는 13세기초 만덕사 백련결사가 알려져 있다. 경기도 성남시 청계산에 있는 정토사가 만일염불결사를 조직하고 6일부터 염불수행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매일 1천번씩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수행은 오는 2027년 10월22일까지 27년5개월동안 계속된다. 전 동국대 교수인 보광스님이 회주를 맡은 이 결사에는 염불선으로 유명한 청화대선사,전 조계종 포교원장 무진장스님을 비롯 대학 전.현직 총장 판.검사 학자등 저명한 승려와 재가불자 1천여명이 동참한다. 결사의 목표는 한국불교의 자정과 깨달음의 추구다. 만일염불결사는 예부터 국난기나 교단의 부패가 심할때 결성돼 새 바람을 불어넣는 신앙공동체운동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운동의 활력소가 됐다. 무엇보다 결사기간중에는 사찰승려들이 지켜야할 청규가 철저하게 준행돼 승풍이 바로 잡혔다. 청계사 만일염불결사가 형식적인 1만일 채우기에 그치지 않고 신앙으로 한국 불교자정운동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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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994호 강화 백련사 철아미타불좌상 2006-02-23 오전 4:11:53
  불교   수행
 
종   목   보물   994호
명   칭   강화백련사철아미타불좌상
  (江華白蓮寺鐵阿彌陀佛坐像)
분   류   철불
수   량   1구
지정일   1989.04.10
소재지   인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231 백련사
소유자   백련사
관리자   백련사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세운 이 절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삼국시대에 한 인도 승려가 절터를 물색하다 강화도 고려산에서 다섯 색깔의 연꽃이 만발한 못을 발견했다. 그는 그 꽃들을 꺾어 공중으로 날리고 떨어지는 곳마다 절을 세웠는데, 흰꽃이 떨어진 곳을 백련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 불상은 여기에 모셔진 것으로 고려 후기에 유행한 단아한 양식을 따르고 있다. 갸름한 얼굴, 단정한 눈·코·입, 좁아진 어깨, 손발의 곡선 처리 등은 절제된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옷은 두껍고 주름은 단순한데 왼쪽 팔꿈치 윗부분에는 독특한 모양의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왼발은 옷 속에 감싸여 있고 오른발이 보이도록 앉은 길상좌(吉祥坐)의 자세이며, 배를 덮고 있는 옷의 띠는 매듭고리와 끈이 좌우로 균형 잡혀있다. 이러한 표현은 청양의 장곡사 불상 등과 비슷한 형식이다. 그러나 큼직하고 대담하게 묘사된 옷 장식이나, 왼쪽 종아리로 내려진 옷자락은 약간 다른 것으로 민천사금동불좌상 등과 매우 비슷한 형식이다.

길상좌 자세에 단아한 모습과 세련된 기법으로 보아 14세기 후반 내지 15세기 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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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경 2006-02-23 오전 3:53:04
  불교   수행

아미타경(阿彌陀經) - 아미타불을 염원하다

정토로 가는 길 일러주는 경전

우리가 부르는 불보살님의 명호 가운데 가장 친근한 명호는 ‘아미타불’일 것입니다. 원래는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여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는 뜻으로 불리워지고 있지요.

《아미타경》은 바로 ‘
아미타부처님’과 그 분이 계시는 정토의 장엄한 세계를 설함과 동시에 정토에 왕생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관무량수경》과 《무량수경》의 내용을 요약한 경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미타불은
통칭되는 명호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미타유스(amitayus)''로서 ''아(a)''는 없다는 부정을 의미하고 ''미타(mita)''는 헤아리다는 뜻인데 합치면  헤아릴 수 없으니까 ''무량(無量)하다''는 의미가 되고, 거기에 수명과 목숨의 의미를 가진 ''아유스(ayus)''를 보태면 바로 무량수불(無量壽佛)이 됩니다.

그리고
''아미타바(amitabha)'' 의 경우도 ''아바(abha)''는 빛(光)을 의미하기 때문에 ''무량광불(無量光佛)''로 번역이 되지만 어느 쪽도 소리를 그대로 옮긴(音寫) 아미타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미타경》의 범본(梵本)은 네팔과 일본 등지에서 여러 가지 사본(寫本)이 전해지고 있고 8세기 무렵에 번역된 티베트본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한역본은 세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주로 독송하는 경전은 간결하고 수려한 문체로 유명한 구마라집이 402년에 번역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경전은 영역(英譯)도 있고 주석서와 연구서 역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리고 《아미타경》은
일명 《사지경(四紙經)》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울 정도로 분량은 비록 적지만, 아주 쉽게 정토사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경전들은 제자들의 간청으로 인해 설법이 이루어진 것임에 비하여 《아미타경》은 부처님께서 스스로 설하신 소위 무문자설(無問自說)의 경전입니다.

그러면 그 내용을 경전 분류방법에 따라 설명하겠습니다. 서론에 해당하는 서분(序分)에서는 부처님이 기원정사에서 장로 사리불을 위시한 여러 제자들과 문수보살 등 수많은 보살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설법하시는 법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본론에 해당하는 정종분(正宗分)은 모두 4장으로 나눌 수가 있는데, 제1장은 극락세계를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우리 모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우러날 정도로 실감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제2장은 그곳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아미타불의 명호를 1일 또는 7일 동안 일심(一心)으로 불러야 한다고 합니다.

제3장은 극락은 모든 불국토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나며, 7일간의 염불공덕으로도 반드시 왕생할 수 있음을 제불(諸佛)보살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제4장은 이 경전을 믿고 염불 수행한다면 내세에는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유통분(流通分)에서는 이 법문을 들은 그때의 대중들이 한결같이 환희하는 마음을 일으켰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아미타경》은
극락정토의 염원과 정토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주는경전입니다.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관무량수경》,《무량수경》과 함께 ''정토삼부경''이라고 합니다. 그럼 정토삼부경의 사상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교에서는 예토(穢土)와 정토(淨土)가 있는데 전자는 더럽고 고통스러운 세계인 반면에, 후자는 깨끗한 세계이면서 즐거움만이 있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정토에는 극락정토 이외에도 미륵정토, 약사정토, 화엄정토 등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극락정토를 지칭하는 예가 많고 ‘정토삼부경’에서는 특히 아미타불이 계시는 극락정토만을 주제로 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경전들과는 달리 ‘
타력신앙(他力信仰)’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때 타(他)는 바로 ''아미타불''을 가리키고 력(力)은 ''원력''의 힘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염불은 타력이라 하고, 참선은 자기 힘에 의지하는 ‘자력(自力)’이라고 합니다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자, 타력을 나누어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것은 일심으로 염불하는 수행 그 자체가 이미 자력적인 것이고, 참선하여 성불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자체에는 타력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토삼부경은 본원(本願)의 대표적 경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원사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보면,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교리가 발달하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수많은 불보살의 출현인데 이 불보살들은 각기 나름대로 독특한 사상을 지닌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보살들의 ‘본원’ 혹은  ‘서원’으로 인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보살님 한분 한분이 가지는 원을 ‘본원(本願)’ 또는 ‘별원(別願)’이라고 하며, 모든 불보살님이 다같이 갖는 공통적인 원을 ‘총원(總願)’이라 하는데 예를 들면, 사홍서원(四弘誓願)과 같은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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