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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승법화원 묘련사 |
| 법화경을 수지독송하는 일승법화원입니다. 법화경을 수지독송하는 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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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께서 미륵보살마하살에게 이르시되,
[아일다야, 내가 이 여래의 수명이 장원(長遠)함을 설할 때 육백팔십만억 나유타 항하사(恒河沙)의 중생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으니라. 또 천배의 보살마하살이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을 얻었으며, 또 一세계 미진수의 보살마하살은 요설변재다라니(樂說辯才陀羅尼)를 얻었으며, 또 一세계 미진수의 보살마하살은 백천만억의 한량 없는 선다라니(旋陀羅尼)를 얻음이라.
또 삼천대천 세계 미진수의 보살마하살은 능히 불퇴의 법륜을 전(轉)하며, 또 이천중국토(二千中國土) 미진수의 보살마하살은 능히 청정한 법륜을 전함이라. 또 소천국토(小千國土) 미진수의 보살마하살은 팔생(八生)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며, 또 사사천하(四四天下)의 미진수 보살마하살은 사생(四生)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며, 또 삼사(三四)천항의 미진수 보살마하살은 삼샘(三生)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며, 또 이사(二四)천하의 미진수 보살마하살은 이생(二生)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며, 또 일사(一四)천하의 미진수보살마하살은 일생(一生)에 마땅히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으며 또 八세계 미진수의 중생은 다 아뇩다라삼막삼보리심(心)을 일으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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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머리에는 털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배를 가지고 와서 그의 머리를 때렸습니다. 두 번 세 번 거듭해서 치니 그만 머리에 상처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저 잠자코 있으면서 피할 줄 몰랐습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왜 피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맞고만 있는가?" 그는 대답했습니다. "저 사람은 힘만 믿고 교만하여 털이 없는 것을 보고 돌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배로 나의 머리를 때려 상처를 내는 것이다." 옆에 있던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어리석은데 왜 그를 어리석다고하느냐?" 네가 어리석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남에게 얻어 맞으며, 또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피할 줄 모르겠는가?" 비구들도 그와 같습니다. 믿음과 계율과 공부와 지혜는 닦지 않고 오직 위의만 갖추고 허세만 부리며 이양(利養)을 불러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남에게 머리를 맞고도 피할 줄은 모르고 심지어는 머리가 터져 피가 흐르고 있는데도 도리어 남을 어리석다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불교우화 백유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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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속세간의 경서이거나 세상을 다스리는 언어학설이거나 자생 산업 등을 설할지라도 다 정법에 순하리라. (묘법연화경 법사공덕품) 사람이 생활해 가는 분야는 정치. 경제. 학문. 문학. 예술......등등, 이것을 잘게 나누면 한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것이나 다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어서 어느 하나 소홀하게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통털어서 크게 나누다면, 세 가지 분야 곧[정치]와[교육]과[실업]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이 새 가지는 확실히 인간 생활의 삼대요소라 하겠다. 그러면, 이 세 가지가 지니고 있는 사명은 무엇일까? 첫째는, 교육은 [참된 것(眞)을 탑구함을 생명으로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참된 생활을 하게 한다. 둘째는, 정치는 인간사회의 안녕질서를 이룩하는 것이니, 곧[착한 것(善)을 탐구함을 생명으로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착한 생활을 하게 한다. 셋째는, 실업은 [아름다운 것(美)을 탐구함을 생명으로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생활을 하게 한다. 이와 같이, 교육 정치 실업의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인간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바로 문화 생활일 것이다. 그런데, 교육 정치 실업의 세 가지가 각각 그에 부과(賦課)된 사명에 충실하지 못하여, 교육은 참됨이 반대되는 허위를, 정치는 착함에 반대되는 악을, 실업은 아름다움의 반대되는 추함을 사회에 퍼드리고 있는 오늘날과 같은 새상은 이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어찌하여 이러한 형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교육도 정치도 실업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일까?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단연코 슬데 없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없이는 인간 생활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 세 가지가 본래의 사명을 충실하지 못하고, 부과된 결과는 정반대의 길로 걷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교육 정치 실업 그 자체의 죄가 아니라,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교육가, 정치가, 실업가의 죄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교육 정치 실업입 본래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그서은 오직 교육가 정치가 실업가가의 자각(自覺)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들은 어찌하여 그들의 양 어깨에 짊어워진 사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유독 오늘의 교육가 정치가 실업가가 학문이나 지식이나 경험이나 능력이 모자란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모자라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남아돌아가지 않는가?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한 가지 중요한 올바른 [종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다행히 그들이 올바른 종교하는 마음을 가지고서 인격을 도야하여, 그것을 자기의 일에 조화(調和)시킨다면 그들은 모두가 교육가로서 정치가로서 실업가로서의 자기의 사명을 훌륭히 완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중요한 것을 무시하고 멸시하기 때문에 자각이 없어서 추잡한 부정사건, 독직사건 등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이다. 불보살의 실재(實在), 생명의 불멸(不滅), 인과(因果)의 이법(理法), 공업(共業)의 소감(所感), 자비와 보은(報恩), 참회의 정신, 대표적 멸죄(滅罪) 등등, 올바른 종교로서의 기반적(其盤的) 사상을 모든 사람이 안으로 함양(涵養)해 가지고서 교육에 정치에 실업에 종사한다면, 각자의 사명은충실하게 수행되어, 본래의 면목이 발휘될 것이다. 법화경의 이상이 바로 여기에 잇는 것이다. 앞의 [속세간의 경서(俗間經書)]란 교육을 말한 것이요, [세상을 다스리는 언어학설(言語學說)]이란 정치를 말한 것이요, [자생산업(資生産業)]이란 실업을 말한 것으로서, 올바르게 법화경 신아에 사는 ㄱ사람이 교육에 정치에 실업에 종사한다면, 결코 삿된 길에 떨어지는 일이 없이, 본래의 사명을 다해서 인간 생활의 진(眞). 선(善). 미(美)에 철저하여 조그만 잘못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설하신 것이다. 이와같이 올바른 종교하는 마음은, 인간 생활의 몯느 면의 밑바닥에 함양된 것, 바꾸아 말하면, 종교하는 마음에 의해 가꾸어진 것이 아니면 아무리 훌륭한 겉모양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래 위에 누각과 같은 것이어서 오래지 않아 무너져버리고 말것이다. 오늘날은 정법이 은몰하는 시대인 말법시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소중히 생각하여 널리 유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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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형제의 바라문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있어 일주일 후에는 자신들이 죽을 것을 미리 알았다. 그들은 서로 의논했다.
"우리에게는 다섯 가지 신통이 있어 하늘과 땅을 뒤집고 해와 달을 어루만지며 산을 옮기도 강물을 흐르지 못하게 하는 등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 죽음만은 피할 수 없단 말인가"
한 바라문이 말했다.
"나는 바다속에 들어가 바닥까지 내려가지 않고 중간에 머물러 있겠다. 아무리,죽음의 살귀(殺鬼)라 한들 어떻게 내가 있는곳을 알 것인가"
또 한 바라문은 말했다.
"나는 수미산 속에 들어가 그 표면을 합쳐 틈이 보이지 않게 하련다. 아무리 죽음의 살귀라도 내 있는 곳은 모를 거다"
한 바라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허공으로 높이 올라가서 거기에 은신하고 있어야지. 죽음의 살귀라도 어쩔 수 없을 거야"
또 다른 바라문은 말했다.
"나는 큰 시장 복판에 숨어야겠다. 죽음의 살귀가 와서 한 사람을 붙들 때 하필 나를 찿을 리는 없겠지"
이와 같이 그들은 각기 숨을 곳을 말하고 나서 왕에게 하직을 고했다.
"우리들의 수명을 헤아려 보니 앞으로 이레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죽음을 피하려고 각기 길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죽음에서 벗어난 뒤 돌아와 뵙겠습니다. 왕께서는 부디 덕으로서 나라를 다스리십시요"
그들은 왕궁을 떠나 저마다 자기가 숨을 곳으로 갔다. 그러나 이렛 날이 되자 그들은 모두 죽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과일이 익어 제물에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시장 감독이 왕에게 아뢰었다.
"어떤 바라문이 시방 한복판에서 갑자기 죽었습니다."
왕은 스승인 바라문임을 알아보았다.
"네 사람이 죽음을 피해 각기 딴곳으로 떠났는데 벌써 한 사람이 죽었도다. 그 나머지 세 사람인들 어찌 죽음을 면할 수 있으랴"
왕은 곧ㄱ 수레를 차비하여 부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말씀드렸다.
"바라문 사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섯 가지 신통력이 있어 자기들의 목숨이 이레 뒤로 임박한 것을 미리 알고, 저마다 죽음을 피해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과연 죽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는 면할 수 없는 네 가지 일이 있소. 첫째는 중음(中陰)으로 있으면서 생(生)을 받지 않을 수 없고, 둘째는 한번 태어났으면 늙지(老) 않을 수 없으며, 세째는 늙어서는 병(病)들지 않을 수 없고, 네째는 이미 병들었으면 죽지(死) 않을 수 없소"
부처님은 게송(偈頌)으로 말씀하셨다.
허공도 아니고 바다속도 아니어라
산속도 아니고 바위 틈도 아니어라
죽음을 벗어나 은신할 곳
그 아무데도 있을 수 없네.
이것은 힘써야 할 일 내가 할 일
나는 이 일을 성취해야 한다고
사람들은 그 때문에 초조히 오가면서
늙고 죽음의 근심을 밟고 다니네.
이런 줄 알아 스스로 고요하고
생사가 이미 끝났음을 알았다면
그는 악마의 손에서 벗어난 것
비로소 생사의 강을 건너가게 되리.
<법구비유경 무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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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법문을 듣는 자는 한 사람도 성불 못하는 사람이 없느니라.
若有聞法者 無一不成佛 - 묘법연화경 방편품 -
부처님 일대의 경전을 크게 나누어, 하나는 성불득도(成佛得道)하는 가르침이요, 하나는 방편의 가르침이다. 그 방편의 가르침이라 하는 것도, 성불의 대도(大道)가 완전히 설해 있지 않다는 것 뿐이고, 성불의 대도의 한 부분 한 부분이 가지가지 형태로 설해 있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를 예로 든다면, 성불득도의 가르침은 곧 그 줄기요, 그렇지 못한 것은 그 가지와 잎인 것이다. 그리고 성불득도의 가르침이란 곧 묘법연화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체 보살의 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다 이경에 속함이니라. 이 경은 방편의 문을 열고 진실의 상을 보이느니라.(一切菩薩 阿뇩多羅三邈三菩提 皆屬此經 此經開方便門 是眞實相)] - 법화경 법사품 -
고 하셨다. 이 말씀과 같이, 법화경은 진정한 성불득도의 가르침이니, 일체의 방편을 제거하고, 오로지 진실을 설하신 경전이다.
이러한 법화경이므로, 이 경을 듣고 신앙한다면 어떠한 사람이라도 성불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참으로 [무일불성불(無一不成佛)]의 경전이다. [만일 법문을 듣는 자는 한 사람도 성불 못하는 사람이 없느니라]하신 이 경문은 시방세계가 다 성불하는 길을 말씀하신 오묘한 경전이다.
이와 같이, 법화경은 성불의 대도를 설하신 것이므로, 부처님게서 입멸하신 후에도, 성불하기를 희망하여 법화경을 받아 가지고 신앙한다면, 성불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가 법화경을 듣고 신수(信受)한다면, 60년 70년의 현세에 편안하고, 내세에서는 영산(靈山 - 영취산)에 나아가서, 무슨 일이나 도(道)에 맞고 올바른 생활을 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참으로 법화경은 현세와 내세에 다 걸치어 편안함을 얻는 오묘한 경(經)이다.
[내가 멸도한 후 마땅히 이 경을 받아 가질지니 이 사람은 불도에 결정코 의심이 없으리라(於我滅度後 應受持斯經 是人於佛道 決定無有疑)] - 법화경 여래신력품 -
하신 말씀이라 든지,
[모든 중생이 이 법문을 들으면 현세에서 편안하고 후생에는 좋은 곳에 나 도(道)로써 낙을 받고(是諸衆生 聞是法己 現世安穩 後生善處 以道受樂)] - 법화경 약초유품 -
라고 하신 말씀이라든지, 법화경을 신앙하는 우리들에게는 모두 희망과 안심을 주는 거룩한 경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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